발효음식

발효음식 청국장 냄새의 과학 – 왜 발효는 향기로울까, 혹은 고약할까?

addream 2025. 8. 15. 16:52

 

발효음식 청국장 냄새의 과학

 

1. 발효와 냄새의 시작 – 청국장의 첫인상

청국장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전통 발효 음식이다. 하지만 그 첫인상은 사람마다 극과 극이다. 어떤 이는 청국장의 구수함 속에서 고향의 향기를 느끼지만, 어떤 이는 한 걸음 물러서고 싶을 만큼 강한 냄새에 놀란다.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화학적 반응과 후각 인식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발효는 부패와 달리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이 식재료 속 영양을 변환시키는 과정이다. 청국장의 경우, 주인공은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다. 고초균은 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흡수율을 높이고, 동시에 다양한 향기 분자를 만들어낸다. 암모니아, 피롤, 에스터류, 페놀류가 섞여 형성된 향은 복합적이며, 사람마다 이를 ‘향기’ 혹은 ‘악취’로 받아들인다. 발효의 본질이 바로 이런 냄새의 양면성에 숨어 있다.
또한 청국장은 발효 속도가 매우 빠른 음식 중 하나다. 서양의 치즈나 일본의 낫토가 발효에 며칠에서 몇 주가 있어야 하지만,  청국장은 단 며칠이면 완성된다. 이러한 짧은 발효 기간에도 강렬한 향이 형성되는 이유는 고초균이 높은 효소 활성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콩 단백질 분해효소(프로테아제)가 활발하게 작용하면서 발효 초기에 이미 상당한 양의 향기 분자가 축적된다. 이 때문에 첫날과 셋째 날의 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2. 냄새를 만드는 화학 – 좋은 향과 나쁜 향의 경계

청국장의 발효 과정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진행된다. 특히 겨울철 2~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고초균은 폭발적인 속도로 번식하며 콩 속의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분해한다. 이때 생성되는 암모니아는 강하고 자극적인 냄새를 낸다. 반대로 에스터류는 고소함과 은은한 단맛을 만들어 발효 향기의 긍정적인 면을 담당한다. 흥미롭게도, 발효와 부패에서 생성되는 분자의 종류가 일부 겹친다. 그래서 발효가 잘못 관리되면, 즉 온도나 습도가 적정 범위를 벗어나면 발효 향은 쉽게 부패 냄새로 변질된다. 좋은 향과 나쁜 향의 경계가 종이 한 장 차이인 셈이다.
여기에 온도뿐만 아니라 발효 용기의 재질도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으로 청국장은 볏짚과 항아리를 이용해 발효시켰는데, 볏짚에 서식하는 고초균이 자연스럽게 접종되며 발효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 현대의 플라스틱 용기 발효는 위생적이지만, 향의 복합성은 전통 방식보다 단순해질 수 있다. 이런 차이는 향의 ‘깊이’와 ‘부드러움’에도 영향을 준다.

 

 

3. 후각의 개인차 – 유전과 경험의 영향

사람들이 청국장 냄새를 다르게 인식하는 이유는 유전적 요인과 경험적 요인이 결합한 결과다. 인간의 후각 수용체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며, 같은 냄새 분자라도 사람마다 감지 강도가 다르다. 일부 사람은 암모니아 향에 특히 민감해 강한 불쾌감을 느끼고, 일부는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여기에 경험이 더해진다. 어릴 때부터 청국장을 먹으며 자란 사람은 그 냄새를 ‘집밥’과 ‘건강’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청국장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은 암모니아 향을 부패의 징후로 오해하기 쉽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후각 적응문화적 학습으로 설명한다. 치즈나 낫토처럼 서양·일본 발효 음식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며, 이는 발효 향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문화적 맥락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다.
흥미롭게도, 연구에 따르면 특정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사람은 발효 향을 ‘풍미’로 인식하는 반면, 변이가 없는 사람은 동일한 향을 ‘악취’로 느낀다. 이는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라 생물학적 차이이기도 하다.

 

4. 냄새를 줄이거나 즐기는 방법 – 전통과 현대의 기술

과거 조상들은 청국장의 발효 환경을 세심하게 관리해 냄새를 조절했다. 콩을 충분히 삶아 단백질 구조를 부드럽게 하고, 발효 중 통풍이 잘되는 장소를 골랐다. 발효를 마친 후에는 햇볕에 건조시켜 냄새를 완화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발효실 온도를 낮추거나 향기 성분이 개선된 고초균 균주를 사용해 냄새를 줄이는 기술이 개발됐다. 또한, 냄새를 최소화한 냉동건조 청국장 가루, 청국장 환 등의 가공 제품이 등장해 발효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높였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저냄새 발효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발효 중 특정 효소 억제제를 사용하거나, 발효 후 냄새 분자를 흡착하는 식물성 섬유를 첨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청국장의 강한 냄새가 발효가 잘 이루어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본다. 발효 향을 억지로 제거하면, 건강에 이로운 폴리글루탐산이나 발효 대사산물의 함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냄새와 건강 효과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적절히’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5. 발효 향기의 재해석 – 고약함 속의 깊은 풍미

발효 음식의 냄새는 ‘좋음’과 ‘나쁨’이라는 단순한 구분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미생물의 정교한 활동이 빚어낸 화학적 향기의 혼합물이며, 그 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후각, 경험, 문화적 배경에 달려 있다. 와인의 떫은 향, 블루치즈의 곰팡이 향, 김치의 시큼한 향 모두 익숙해지면 고급스러운 풍미로 변한다. 청국장 역시 마찬가지다. 발효 향기를 단순히 ‘악취’로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전통과 과학, 그리고 생명 활동의 흔적을 이해하면 새로운 관점이 열린다.
청국장의 향은 단순히 ‘냄새’가 아니라, 미생물과 인간이 협력해 만든 결과물이다. 미생물은 콩을 분해하며 생존하고, 인간은 그 부산물에서 영양과 맛을 얻는다. 이런 공생 관계가 수천 년 동안 지속되며, 청국장은 한국인의 문화와 건강을 지탱해 왔다. 그러니 다음에 청국장을 만났을 때, 코끝에 스치는 그 강렬한 향 속에서 인류가 쌓아온 지혜와 미생물의 예술을 함께 떠올려보자.